‘음식은 나눠 먹어야 제맛’이란 말이 있다. 제아무리 황후장상의 수라상이라도 혼자라면 눈요기는 될지언정 맛에 대한 감흥은 메마른
사막처럼 황량할 것이다. 반면 볼품없는 음식이라도 친구·가족·이웃사촌과 함께라면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런
나눔의 최고봉이 바로 ‘잔치 음식’이다. 덩실덩실, 들썩들썩, 시끌벅적, 신명 나는 잔치의 흥겨움은 음식으로 인해 배가되고
사람들은 하나로 연결되니 이것이 잔치 음식의 미덕이요, 강점이다. 음식 하나를 차려도 개인적인 공간을 배려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조차 잔치 음식의 미덕은 유효하다. 국내에는 낯선 고장인 오카야마(岡山)에서 만난 바라스시는 미식에 대한 민초들의 욕망까지
담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이틀 걸려 만들고, 30분 동안 나눠 주고
삼치, 새우, 붕장어, 갯장어, 광어, 청어, 대구, 조개관자, 갑오징어, 오징어, 토란, 당근, 우엉, 얼린 두부, 버섯,
오이, 생강, 순무, 유자, 콩 등등…. 재료를 수첩에 적던 허영만 화백이 벅찬 듯 “타임!!”을 외친다. 3대째 가업을 이어 온
후쿠즈시에서 만난 바라스시는 36가지 재료의 숨막히는 각축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함과 화려함이 돋보인다. 허 화백이
수첩에 마침표를 찍자 구보타 사장이 바라스시 탄생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를 들려줬다. 에도시대 초반 대홍수 피해 등으로 재정이
바닥난 오카야마 성주 이케다는 ‘이치 지루 잇 사이(一汁一菜)’, 즉 식사 시 국 한 그릇 반찬 한 가지만 허용한다는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축제 때는 반찬 종류를 늘렸으면 좋겠다’는 간청이 쇄도했는데, 성주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대한 백성의
대답이 바로 바라스시였다는 것이다.
'따로따로’라는 ‘바라’의 뜻에 걸맞게 각종 재료를 개별적으로 준비해 밥 위에 얹어 하나의 음식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성주의
명령에도 복종하고 미식의 욕구 역시 충족시켰던 셈이다. 한마디로 백성들의 지혜와 재치가 오카야마의 명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조리 과정도 그 유래만큼 독특하다. 핵심 재료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서 잡히는 ‘사와라(さわら)’, 즉 삼치다. 삼치즙을 섞은
식초와 간장에 찐 부드러운 살은 바라스시의 전반적 풍미를 조율한다. 이외에 다양한 재료들은 속재료와 윗재료로 나눠 각각의 특성에
맞게 미림·간장·설탕·식초 등으로 간하고 찌고 재우는 준비가 총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시간이 지나 얼추 간이 배면 밥과 속재료를 (삼치즙) 식초에 버무려 2시간을 재운다. 그리고 위에 계란 지단을 넓게 편 뒤 다시
윗재료를 가지런히 올려 최종적으로 1시간을 더 재우면 마무리된다. 재료는 모두 제철에 난 것이며 냉동 재료 사용은 일절 없다.
취재로 시식이 늦어지자 여기저기서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한국 방식이라면 당연히 재료를 한데 비벼 나눠 먹으면 그만이지만 바라스시는 다르다. 표면을 덮고 있는 윗재료를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아 두고 밥과 함께 속재료를 먼저 개인 그릇에 담는다. 이어 취향에 따라 윗재료를 배분하는데, 이가 약한 노인들에게 부드러운
재료 위주로 나눠 주는 식이다. 좌석 수에 따라 정성스럽게 담으니 훌쩍 30분이 넘어가고 일행은 젓가락을 꽉 쥔 채 침만 꼴깍꼴깍
삼킨다.
대장정(?)의 막이 내리고 여수 출신이라 삼치 맛 좀 안다는 허 화백이 큼지막한 삼치살을 김치처럼 밥 위에 얹어 시식을 시작한다.
부드럽고 고소한 삼치의 풍미가 맛을 이끌고 이어 산뜻하고 향긋한 식초의 향미가 후각을 살살 자극하더니 곧바로 다채로운 재료들이 입
안에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계절의 신선함을 전달한다. 허겁지겁 먹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허 화백이 ‘이틀 걸려 만들고
30분 동안 배분한 음식을 5분 만에 먹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비추자 사장이 “바라스시는 축제 초밥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진짜 축제
분위기 같다”며 흥겨운 마무리를 짓는다.
바라스시에 담긴 일본의 오스소와케 문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잔치 음식은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고 일체감을 형성시켜 주는 매개체로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바라스시와
관련해 오카야마에 널리 퍼져 있는 정서가 ‘오스소와케(おすそ分け)’ 문화다. 오스소와케란 나눠 먹기 정서다. 일반적으로 오카야마
사람들은 바라스시를 만들 때 가족 수의 3~4배를 준비한다는 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라스시를 만드는 순간부터 나눠
먹는 순간까지 축제 분위기였다’는 구보타 사장의 회상에서 우리의 품앗이 같은 정겹고 훈훈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보다 호화로운 재료에 대한 인간의 욕심과 경쟁심으로 인해 사치의 극치를 치닫게 돼 한때 ‘초밥 한 되가 금 한 냥’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부작용도 심했다고 한다. 바라스시에 사용되는 재료의 가치와 종류가 각 지역사회 경쟁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한편
바라스시 탄생의 원인을 제공했던 이케다의 기일인 6월 27일은 ‘초밥의 날’로 지정됐는데 죽는 날까지 이 축제 음식을 외면했을
그를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온천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