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와 같이 얘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어제 남자친구가 자고 갔거든' 이라는 말을 해 버렸다. 보수적이다
못해 봉건적이기까지 한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해 버렸으니 아차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남자 친구와 손만 잡고 잤으니까 걱정 말라고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
엄마가 보수적이건 혹은 개방적이건 간에 아마도 당신의 딸자식인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아직 생물학적으로 처녀이길 바랄
것이다.
내가 이미 혼자산지 10년이 넘었고 나이가 서른이 다 되었다는, 그리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 처녀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사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는가 무척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나보다 더 당황하는 건
엄마였다.
나가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해 놓구서는 내가 좋아하는 김치전을 해 줄까를 묻고, 새로 산 높은 신발이 익숙치
않아서 넘어질 뻔 했다는 얘기를 하고 또 했다. 엄마에게 무슨 얘기든 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집을 나서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꼭 피임은 해야 한다. 알겠지?'
이 말을 하면서 엄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식에게 섹스니 피임이니 하는 얘기를 한다는 것이 우리
엄마에게는 너무나 곤혹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내가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 엄마는 작은 케?揚?사서 촛불을 켜 주며 축하를 해 주었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이제 더
이상은 어린이가 아닌 여자라는 성을 가지게 됨을 축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게 있어 내가 여자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달에 한번 생리혈을 몸 밖으로 흘려내보내는 것일 뿐,
내가 여자로써 남자의 페니스를 받아들여서 섹스를 하고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세대에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처녀인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그리하야 첫날밤 이불 위에 혈흔
한 조각을 남김으로써 그것을 자랑스럽게 증명하고 또 확인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처녀라는 것은 본인의 의지로 그럴 경우는 아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랑스럽기보다는 수치스러운 일에
가까울 것이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여동생이 나에게 전화도 없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 데 그때 마침 나는 남자친구와
한참 섹스를 하고 있었다. 차임벨이 울렸을 때, 나는 달리 올 사람이 없다고 느끼고 인터폰을 받았는 데 상대는
여동생이었고 '잠깐만' 이라고 다급하게 외친 다음 남자친구와 나는 옷을 입고 침대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치가 빠른 여동생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좀 전에 남자친구와 내가 뿜어낸 열기를 감지해냈고 그날따라 무척 빨리
집으로 돌아갔었다. 언니인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은 함께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리로만 알고 있는 일일 뿐, 실제로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아마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지 몇 년이나 지난 다음 여동생은 술을 마시면서 그 얘기를 했었다. 당시 재수생이던 여동생은 그
일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한동안은 내 얼굴을 보는 게 무척 어색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나는 여동생과 남자에 대해 혹은 섹스에 대해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얘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다. 당시 남자친구 3명과 여자친구 2명이 우리 집에 놀러
왔었고 우리는 이불을 펴 놓고 전기놀이를 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전기 놀이란 이불아래
손을 서로 맞잡고 있다가 어느 한 사람이 손을 꽉 잡아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처음 신호를 보낸 사람을
찾아내는 놀이이다.)
그러다가 마침 집 지하실에서 가구를 만들고 계시던 아빠가 방으로 들어왔고, 아빠는 이불을 보더니만 나에게
무서운 얼굴로 뭘 하고 놀았는지를 물었었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아빠가 어떤 상상을 했는지를 알았다.
물론 그 나이로는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아빠는 이불과 남자애들 그리고 여자애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집안 식구들은 모두 개방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 중 그 누구와도 섹스에 관한 얘기는 전혀
해 본 기억이 없다. 이건 비단 우리집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어디나 다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섹스를 하는 건 묵인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에 띄지 않게, 혹은 입밖으로 내지 않았을 때 뿐이다.
현 교육 시스템은 성교육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 특히나 내 시대에 받은 교육이라고는 기껏해야 생리를 시작할
무렵의 여자 아이들을 모아놓고 생리대 사용법 내지는 생리를 하게 되고 남자와 동침을 하면 임신을 하게 된다는 얘기만
해 줄 뿐이었다.
요즘은 그나마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콘돔의 사용법을 가르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성교육의 일부일 뿐이다.
그 이외의 성 지식은 모두 친구들의 입을 통해 혹은 야한 비디오를 통해 알게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두가지는 극단적인 허풍 내지는 상업성으로 인해 왜곡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단
한번도 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 큰 즐거움중의 하나인 성에 대해 한번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만약 이런 일들을 가족과 얘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세대가 부모가 되거나 혹은 그 아래 세대들이 부모가 되면 이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성교육이
필요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감히 시도조차 할 마음을 먹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되건 혹은 되기 이전이건 남녀가 만나게 되면 섹스를 하게 될 확률이 무척 높다. 그런데 다른 모든 삶에
대한 방법은 부모로부터 배울 수 있지만 그 문제만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만 한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부모와 자식 혹은 가족들과 섹스를 얘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섹스 문제를 가족과
얘기한다면 우리는 뒷다리 긁는식의 성교육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모든 가족들은 애초에 섹스가 있었기에 그 구성원의 존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근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풍부한 성지식을 갖고 섹스를
즐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모들이 오르가즘을 더 쉽게 느끼는 법 같은걸 전수해줄 일은 좀처럼 없겠지만
말이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결혼해야 섹스를 했던 세대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런데 유독 이 사실을 함께 사는
가족들만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성에 대한 궁금증은 무척 어릴 때부터
출발한다. 아이들은 흔히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적당한 나이가 되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거나 배꼽에서 생겼다는 것 대신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하면 섹스에 대해 서로 말하기가 훨씬 더 편해질 것 같다.
서구의 엄마들처럼 여자애의 등교 가방에 피임약을 넣어주는 정도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섹스에 대해 말은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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