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베토벤·슈베르트가 없는 이유

귀족 소녀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청혼한 루트비히를 탐탁지 않게 여긴 건 그녀의 아버지였습니다. 출신 성분이 다른 데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그가 장래성 없는 음악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주제에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이 괴팍한 청년에게 딸의 여생을 맡기자니 실로 답답했을 겁니다. 결국 강경한 반대 속에 두 젊은 연인은 이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뒷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채 몇 년 지나지 않아 딸을 시집 보낸 줄리에타의 아버지가 선택한 청년은 웬처 폰 갈렌베르크라는 백작으로, 그의 직업은 다름 아닌 작곡가였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에 작곡가로서의 앞날도 촉망되는 그가 귀차르디 백작의 마음에는 퍽이나 들었을 겁니다. 비록 2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음악사 한 귀퉁이에 기록될까 말까 한 이름에 지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때는 훗날 어떤 인물이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청년 루트비히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남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양음악사의 거장 대부분이 당대에는 그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비단 음악가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각자나 과학자, 많은 미술가 역시 당시에는 스스로의 이름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될지 상상조차 못 했을 테지요. 반대로 당대에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예술가들이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잊혀진 경우 역시 허다합니다. 대부분의 뛰어난 예술작품이 시대를 앞서 가기에 빚어지는 현상이기도 하고, 예술의 주관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장 추상적인 예술인 음악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모두 훌륭한 음악일 수는 없는 셈이지요.
그러나 그 자체가 인간의 감정을 인용해 타인에게 감동을 전하는 매개체이기에 허공으로 날려 버리는 예술 역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애호가들의 정신적 후원입니다.
슈베르트는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이미 44개에 달하는 괴테의 시를 가곡으로 옮겨 놓을 정도로 괴테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사상 가장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 중 하나였던 그를 정작 괴테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몇 번에 걸쳐 자신에게 보내 온 가곡 몇 편에 끝내 아무 답도 하지 않았던 그가 음악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신동 펠릭스 멘델스존을 누구보다 아낀 사람이었으니까요.
슈베르트는 죽기 몇 해 전 빈에서 잠시 큰 명성을 얻은 것을 제외하면 평생 대중의 사랑과도 거리가 먼 존재였습니다. 단 그의 곁에는 그의 재능을 사랑한 소수의 친구들, 슈파운·포글·쇼버 등이 속한 슈베르티아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슈베르트를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무능력한 작곡가로 평가절하해 지지를 멈췄더라면 오늘날 우리에게 슈베르트는 기억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20세기로 넘어와 전통적인 고전음악의 창작행위가 사실상 종료되고 지금까지 남겨진 것을 연주하는 게 더욱 사랑받는 식으로 음악계의 판도가 바뀌자 과거 작곡가들의 위치를 연주가들이 대체하게 됐습니다. 자연히 그 수가 수백 배로 늘어났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서로 더 많은 이에게 인정받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품을 먼저 남기고 그 가치를 판정받는 일을 보류할 수 있는 작곡가와는 달리 인정받지 못하면 당장 무대에 설 기회를 잃는 연주가들의 세계는 더욱 냉혹합니다. 물론 그 가치를 판정받는다는 것이 실로 미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외부적 환경이 그 재능을 가리거나 혹은 과대 포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찾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일 거라는 비예술적인 관념이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그 자체의 가치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본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젊은 날의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해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면 현재 인류의 자산으로 남아 있는 그들의 작품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주목 받는 예술에만 관심을 두기보다 스스로 여러 가치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닐까요. 물론 그보다 먼저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표가 아닌, 진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와 줘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