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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을 수 없었던 암묵의 규칙 - 요하네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악기를 사랑한 음악가

브람스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현악 6중주 2번 2악장'을 작곡한 것은 1865년 그의 나이 32세때였다. 애인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애인의 이름이 알파벳이 조로 사용되며 변주된다. AGADHE. 여기서 H는 영어로 B이다. 그래. 아가테. 그녀의 이름은 아가테였다.
"사랑합니다. 하지만 속박당하기는 싫어요."


결혼을 하자고 말한 그녀에게 그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친구에게는 "마지막 사랑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사실 브람스는 평생 한 여자만을 사모했다. 바로 스승인 슈만의 부인 클라라였다.

 

브람스의 후기작 '클라리넷 5중주 작품 115번'은 한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를 위해 쓰여졌다. 1891년 그의 나이 58세. 죽기 6년 전이었다. 바로 전 작품 '클라리넷 3중주'도 그녀를 위해 쓰여졌다.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를 통해 그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 홀딱 반했다.


그렇다. 클라라 때문에 어떤 여인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브람스는 대신, 악기 자체를, 악기의 음색 자체를 사랑하였다.

 

 

행복의 프렐류드

브람스는 슈만 부부를 알게되고 그들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바랑을 등에 멘 헙수룩한 차림이지만 어깨까지 드리운 금발이 찬란했다. 눈은 하늘같이 맑았고, 타는 듯한 열정을 담고 있었다. 그런 차림으로 라인 강 골짜기를 걸어서 왔다는 말을 듣고 슈만은 그를 응접실로 맞았다. 슈만의 나이 43세, 그의 나이 20세 때의 일이었다. 


슈만은 브람스가 자신의 첫 작품 '피아노 소나타 작품 번호 1번'을 연주하는 도중에 브람스 어깨에 손을 얹었다. 브람스는 긴장했다. 듣기 싫으니 그만 치란 얘긴가?
그와 정반대였다. 슈만은 클라라와 함께 듣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클라라는 가장 뛰어난 여성 피아노 연주자였다.


"여보,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야. 훌륭해. 당신도 좀 들어 봐요."


클라라도 즉시 브람스의 천재를 알아보았다. 브람스와 슈만, 그리고 클라라는 그렇게 만났다.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첫눈에 반했다. 아, 아름답다. 하지만 연애 감정은 아니었다. 어머니같기도 하고 누이 같기도 한, 사랑이 느껴지지만 안달복달하고 불안하기까지 한 그런 남녀간의 울퉁불퉁한 사랑이 아니고... 아, 왜 이리 편안하지? 브람스 음악의 '나이 든 아름다움'이라는 알맹이는 그 때 싹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브람스는 한 달 동안이나 슈만 부부와 지냈다. 올망졸망한 여섯 아이들은 착하고 귀여웠다. 그리고 소탈했다. 클라라는 브람스를 따스하게 보살펴 주었다.

 

그녀는 분명 어머니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슈만 부부와 함께 지낸 가정 환경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정반대였다. 정말 다정하고 우정과 사랑과 존경이 가득 찬 집안이었다. 그 즐거운 생활은 브람스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듯 했다. 그는 말재주가 늘고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내내 명랑하고 그러했다. 슈만은 브람스를 음악 잡지에 크게 소개하고 유명 출판사와 악보 출판 계약을 맺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슈만의 칭찬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브람스의 음악적 명성은 빠른 속도로 드높아졌다. 연말이 되어 고향 함부르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술집의 악사가 아니었다.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아니 이미 위대한 음악가로 대접받았다. 브람스 자신도 놀랐을 정도였다.

 

슈만 부부를 만날 당시의 20세의 브람스

 

 

 

 

스승의 아내를 향한 사랑

1854년 이듬해, 슈만 부부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온다. 4개월 간의 러시아 연주 여행의 여파로 정신과 육체적 건강이 악화된 슈만은 결국 정신병을 앓다가 라인 강에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그는 구조되었으나 일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남겨진 클라라를 지켜보는 브람스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팠다. 브람스는 곤경에 처한 스승의 가족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슈만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한편 실의에 빠진 클라라를 위로하였다.

 

그러는 사이 브람스의 가슴 속에서는 예기치 못한 감정이 싹트게 되었다. 바로 클라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자기 감정을 억제하였다. '저 분은 스승의 아내이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애써 우정을 지켜나갔다.

 

2년 뒤, 슈만은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고 브람스는 그 소식을 듣고 함부르크에서 뒤셀도르프까지 허둥지둥 한걸음에 달려왔다. 어린 6남매를 둔 클라라는 슬픔과 당황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브람스는 그녀를 평생 돌보기로 결심했다.


그 후 클라라는 브람스를 아들처럼 대했고 브람스도 극진하게 클라라를 보살피며 자신의 사랑을 달랬다. 브람스는 자신이 작곡한 모든 음악을 그녀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그게 그 어려운 사랑과 존경의 결합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호칭도 '부인'에서 다소 친근한 '당신'으로 바뀌지만 우정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45년을 교제하였다.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이름을 널리 알린 '독일 진혼곡'은 살아남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곡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이 곡을 지은 이유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질무렵 식당으로 가는 말년의 브람스

 

잔잔했던, 그러나 아름다웠던 사랑은 생애과 함께 지고...

한평생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던 브람스. 클라라를 향한 사모의 정을 간직한 채 어느덧 늙어 60대가 되었다. 어느날 그는 죽음에 관한 명상을 담은 노래 '네개의 엄숙한 노래'를 짓기 시작해 63번째 생일에 완성하였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라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삶을 지탱해 온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승에서나마 사랑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그날 이후 브람스는 몸이 급격히 약해져 간암으로 몸져눕고 말더니 이듬해 봄 클라라의 뒤를 따라 눈을 감았다.


낭만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고전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확립했던 브람스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뤄졌고 주검은 빈 중앙묘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 개인평 : 브람스와 클라라의 러브스토리를 읽고나서 그 여운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브람스와 클라라'를 블로그 포스트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 수백개의 포스트가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한 사람만 바라보는 그런 잔잔한 플라토닉 러브를 은근히 동경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브람스도 긴 인생동안 몇 명의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클라라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속마음이라든지 모두 보여주지 않았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에도 벅찼다.  

 

그의 마음속엔 항상 클라라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였다. 브람스의 사랑은 분명 한때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 브람스도 처음에 클라라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할 때 존경심의 발로로만 알고 사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츰 이 감정은 사랑이라는 걸 인정하였을 것이다.

 

클라라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브람스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돌봐주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아무튼 연상의 연인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과 미소를 간직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보다 14살이나 더 인생을 앞서 살아왔으며, 그녀가 한참 연상이라는 것과 음악적 재능은 그를 항상 우러러보게 만드는 존경심과, 그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것이 섞인 미묘한 감정을 만들었다.

 

조건없이 서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사랑이 얼마나 멋진가? 마치 w-inds.의 'Give you my heart'의 가사처럼...

 
Source: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0hiroyuki0o&logNo=60029227895&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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