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 또는 오뎅

길거리 음식에서 초밥집 명품요리까지
연일 강추위가 매섭다. 서해안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눈까지 내리고 있다. 연말에 움츠린 마음과 얼어붙은 몸을 녹여줄 따뜻한 국물에 술 한잔이 그리 계절이다. 이런 차가 날씨에 제격이 따한 에 뜻하 데운 청주 한 잔이다.
남녀소 구분 없이 온 국의 길거리 음으로 자리 잡은 오() 도의 곳에 일본식 술(사케바)과 어묵바의 표로 자리 잡고 있. 오늘날 오뎅은 전에 없던 전성기를 고 있는 셈이다.
초밥의 로 맛깔스런 어묵요로부터 젊은이들의 길거리 간식거리로서의 어묵, 시장통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한 끼 식사로서의 어묵까지 다양한 모습의 어묵요리를 알아보았다.
<어묵 어원과 사>
1. 어묵과 오뎅의 어원
어묵은 흰살 생을 잘게 갈아 약간의 밀가루를 넣어 친 을 말하 튀 삶거나 쪄서 먹는다. 생선묵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묵을 로 오 르 하지만, 일본어의 오뎅 을 모서 만 말한다.
우 말 어묵 일본에는 오뎅이라고 않고 ‘가라 부른다. 가마보꼬는 갈아 으깬 생선살을 얇은 무 관 주위에 발라 구운 것으로 그 모양이 부들 이삭과 하여 부들 창이라는 뜻의 가마보꼬(蒲鉾)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가마꼬로는 가운데가 뻥 뚫린 나무 대롱 모양 '치쿠와(竹輪)'와 반죽한 생선살을 반달 모양으로 썬 '한펜(半片)' 등이 있다.
일어로 '뎅'이 말 원 '덴가(田楽)'의 첫 글자에 접두사 오(お)가 붙은 말이다. 존손·친숙 등의 어감을 가진 접두사 ‘오’를 음식물에 붙이는 어법은 주로 여성과 아이의 것이지만 기본으로는 먹을 것이 귀했던 과거가 잠재의식으로 남아있음을 보여 준다.
덴가쿠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무로마치(室町 · 1338∼1573)시대 모내기철에 행하던 놀이의 하나로 죽마를 타고 그 위에서 추던 춤이요, 다른 하나는 꼬챙이에 끼운 두부에 된장을 발라 구운 ‘두부 장 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후자의 이름은 그 모양이 전자인 덴가쿠 춤의 모양을 연상케 한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처음에는 '두부 된장 구이(田楽)'를 의미하던 것이 에도시대 중기인 18세기에는 덴카쿠를 국물에 넣어 함께 끓이는 형태의 요리가 처음으로 나타났고 에도시대 말기에는 오뎅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란 주로 삶은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재료 역시 다양해져 오뎅은 토란이나 무, 가다랑어, 어묵, 구운 두부, 은 계란 등을 넣은 오늘날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의 오뎅에는 옛날 덴가쿠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재료를 꼬챙이에 꿴다거나 구운 두부를 쓰는 등 덴가쿠의 옛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2. 우리역사 속의 어묵
1)생선숙(生鮮熟片)--숙종대왕이 잡수신 어묵 숙종 43년(1719)의 기록인 「진연의궤」에는 생선숙편(生鮮熟片)이란 찬품(음식)이 있고, 이 음식의 재료구성을 보면 ‘대생선 3미, 간장 3홈, 녹말 1되 5홉, 참기름 3홉, 잣 5작’이라는 기록이 온다. 생 말의 구성 비율로 보았을 때, 생선 으깬 것에 녹말·참기름·간장을 넣고 쪄낸 다음 이것을 편으로 썰어 가루를 은 간장에 먹었던 것으로 다. 즉 생선어묵이다.
2)생선문주(生鮮紋珠) 생선숙편이란 말은 이후의 기록에는 사라졌지만 「진찬의궤」(1829), 「진연의궤」(1901),「진연의궤」(1902)에 생선문주(生鮮紋珠)란 세련된 명칭으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361쪽)
3)가마보곶(加麻甫串) 일본에서는 생선묵을 가마보고라 하는데, 중국어 역관이었던 이표가 지은 「수문사설」(1746)에는 생선묵에 대해 일본의 이름인 가마보곶(加麻甫串)이라고 표기해 소개하고 있다.
‘물고기 살을 얇게 저미고, 여기에 돼지고기·쇠고기·버섯·해삼·파·고추 등을 다져 만든 소를 얹어 3,4켜가 되도록 한다. 그 다음에 이것을 두루마리 종이 말듯이 둥글게 말아 삶아낸 다음에 썰어서 먹는다.’라고 적혀있다.
숙종대왕이 먹은 생선숙편과 이표의 가마보고와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당시 일본으로부터 들여 온 것은 전부 ‘왜(倭)’자를 붙였기 때문에 생선숙편이 일본에서 들여온 문화라면 ‘왜’자가 생선숙편 앞에 붙어 ‘왜생선숙편’이 되던지 ‘가마보고’가 되어야 옳다.
고로 생선묵(가마보고)이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음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생선숙편이 일본에 전해져 가마보고가 되었다가 일본에서 발달한 어묵이 우리나라에 역수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1719년의 생선숙편은 그로부터 17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생선문주란 이름의 찬품으로 조선왕조의 연회에 등장하고 있다. 이 생선문주가 일본 가마보고의 영향을 받아 된 것으로 추측해 본다. (김상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가람기획 236쪽)
3. 어묵의 도입기--부산 오뎅
우리가 지금 먹는 어묵은 일제시대에 들어왔다.
1927년 무렵 우미관 앞에 일본 오뎅집과 우동집이 들어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시대 외식문화의 하나가 오뎅집이었다. 그런데 중국음식이나 일본음식, 양식집은 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은 반면 오뎅집은 술집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1935년 동아일보에 오뎅집, 선술집, 내외주점도 카페에 준하게 새벽 1시 이후 영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분명 오뎅집은 술집으로 분류되고 있다.
1940년대 환공식품이 부산 부평동 사거리에서 어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부산 부평동(자갈치시장 건너편)을 중심으로, 시장이나 포장마차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부평동 오뎅할매부터 시작한 부산 효성어묵, 부산 대원어묵, 부산어묵(1974년), 남부식품, 선우어묵 등이 있다. 따라서 자연히 부산이 어묵의 도입지이자 대명사가 되었고 나중에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 시작한다. 기업 제품으로는 1985년 삼호 F&G에서 만들었다. 이때 "어묵"이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
1990년대 초에 소위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부산어묵은 앞의 부산어묵과는 달리 길쭉한 모양의 어묵을 부르는 말이 되었다.
<일식 초밥집 명풍요리, 어묵(오뎅)탕> 일식 어묵탕은 가스오부시(가다랑어 포)육수에 어묵, 무우, 쓰지(소고기 힘줄, 연골부위), 계란, 야채 등을 넣어 끓인 다음 이들을 함께 내놓는 모듬 요리이다.
예전부터 명성 있던 오래된 일식 초밥집을 찾으면 괜찮은 어묵탕을 만날 수 있다. 이곳들은 대체로 건물이 비좁고 시설은 낡았다. 하지만 과거의 향수를 찾아오는 연세든 어르신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음식의 내용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대부분 1~2만원 정도의 음식들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구에는 어르신들의 거리라는 중구 종로동 진골목 입구의 <종로초밥>, <미성초밥> 그리고 반월당 시티은행 뒤편 <삼삼구이 초밥>들이 대표적이다. 주택가인 수성구 지산동 지산영남아파트 입구의 대머리초밥은 다른 곳에 해 분위기는 좋으나 가격이나 맛은 큰 장점이 없다.
1. 대구 종로초밥
식 오뎅탕으로는 대구를 대표한다. 진한 오뎅국물에 건더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다. 가격도 1만원선으로 저렴하다.
오뎅탕, (선어)모듬회, 생선초밥을 주문했다. 종로초밥 오뎅탕에는 어묵, 무, 두부, 계란, 시금치, 양배추 고기말이, 곤약 등과 일본식 오뎅탕에 꼭 들어 가야하는 쓰지(소 힘줄, 연골)가 들어가 있다.
모듬회와 생선초밥에는 비교적 가격이 싸고 육질이 무른 선어를 이용한다.(선어 모듬회 1만원), 광어, 우럭 같은 활어도 취급한다.
2. 대구 미성초밥
종로초밥 맞에 종로밥 쌍벽을 이루는 오뎅탕 별미집이다. 오뎅탕과 초밥을 주문했다.
따뜻한 청주 한 잔과 오뎅정식, 초밥을 주문했다. 오뎅정식은 위의 두 집에서 보이는 쓰지가 없었다. 초밥은 위의 두 곳보다 맛이 괜찮았다.
4. 대구 대머리초밥
겨울철 어묵탕과 어울리는 술은 단연 데친 따뜻한 청주나 사케이다. 술 도수는 약하지만 첫 모금을 마실 때 따뜻한 기운이 온 몸으로 확 퍼진다. 또 한두 잔이면 술기운이 퍼져 술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냥 데워서 내놓는 정종보다는 복지느러미를 구워서 넣어 마시는 '히레정종', 혹은 '히레사케'가 더 구수한 맛이 나서 순하고 인기도 높다. 복어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뚜껑을 덮고 1분 정도 두면 복어향이 가득 차는데 독소 있는 생선 지느러미로 술의 독소를 제거하겠다는 생각에서 넣은 것 같다.
또 데친 정종을 내놓을 때 술집에 따라 불을 붙여서 내기도 하는데 이는 술의 독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별 근거는 없음, 정종을 데칠 때 벌써 많은 알콜이 날라 감)
일본에서는 사케를 마시더라도 50℃ 이상으로 데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80℃ 이상으로 데운다. 잔을 못 잡을 정도로 뜨겁다.
※청주는 한국 전통술 청주 혹은 정종은 일본술로 알려져 있다. 일본술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니혼쥬'는 '사케'라고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 청주와 다름없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보리(保利)형제가 누룩을 써서 술을 만들었는데 이를 백제의 인번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전수해줬다고 한다. 일본의 '고사기'에도 응신천왕(AD 270∼312)시대에 백제에서 인번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米酒)를 빚어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 때 전수한 조법이 오늘날의 그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누룩을 사용, 양조한 청주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전래의 곡주 양조법이 계승 발전되어왔고 조선시대에 들어 고급화 추세를 보이면서 제조 원료가 맵쌀에서 찹쌀로 바뀌는 등 제조법이 진화되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펌)
<오뎅전문 선술집 오뎅탕>
2001년부터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오뎅 전문 선술집 오오뎅뎅 2곳의 오뎅탕이다.
<분식집 오뎅>
매 양념 뎅으 이을 날리고 있는 대 동성로 백화점 문 옆 대백 양념 오뎅집의 오뎅과 분식 체인점 간지붕의 매운 양념 오뎅이.
1.대 양념 오뎅
대구백화점 건물 남문 아래 주 위치한 대백 양념 오뎅은 걸쭉한 매운탕 국물을 얹은 오뎅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예전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대에 많은 매운 양념 오뎅 포장마차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부 철거하다. 부근의 오뎅은 ‘동성로 오뎅’ ‘대백 오뎅’ 등의 고유명사로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인 교동시장의 양념 뎅 명하다.
2. 빨간지붕 양념 오뎅
매운 양념 오뎅, 떡복기, 납짝만두, 김밥 등을 취급하는 전국적인 분식체인점 빨간지붕의 양념오뎅이다. 매운 양념 오뎅에 야채는 없으나 캪사이신이 들어가 있는 국물 맛은 매우 깔깔하다. 먹고나면 입이 얼얼하다.
<길거리 음식, 오뎅>
1. 야채 즉석 어묵
어묵반죽에다 각종 야채 및 햄, 떡, 맛살 등을 넣어 만든 ‘야채 즉석어묵’은 길거리 히트상품으로 부상했다.
1)야채 즉석 어묵의 원조집
원조는 대구 중앙파출소 뒤편에서 7~8년째 야채 어묵을 팔고 있는 권칠성씨이다. 이 집은 간판도 없는 조그만 구멍가게이다.
권 씨는 파, 당근, 깻잎, 고구마, 양파, 청양고추, 마늘 등 일곱 가지 각종 야채를 섞어 넣고 1천 원짜리 한 종류만 팔았던 그야말로 전국 최초 야채 즉석어묵 원조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말하는 물오뎅도 다른 곳과 달리 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고급 어묵재료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들고 몇 마리의 게를 넣어 만든 국물 맛도 뛰어났다. 자신의 사진은 찍지 말고 홍보는 잘해달고 부탁을 한다. 사실 먹어 본 야채 즉석 어묵 가운데 가장 맛있었다.
2)수성 대로변 아채 즉석 오뎅(핫바)
2. 대로변 분식 포장마차 오뎅
3. 시장 좌판 오뎅
대구 서문시장 좌판의 물오뎅과 콩나물이 든 매운 양념 오뎅
※ 위의 사진은 대구에 소재한 14곳 오뎅집의 오뎅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