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기러기 아빠 선택한 재미교포

미국 뉴욕 맨해튼 인근 뉴저지 포트리에서 일하는 최진수(崔鎭秀43) 변호사. 1985년 미국으로 이민 와 명문 UC버클리대학을 졸업한 그는 산더미 같은 서류에 파묻혀 밤늦게 퇴근하는 잘 나가는 변호사이지만 요즘 외롭고 힘든 홀애비 생활을 하고 있다. 부인 김진이(39변호사)씨와 아들 2명 모두 한국으로 가버렸기 때문. 그는 대학 동창으로 만나 결혼한 부인과 함께 뉴욕에서 7년간 살면서 한 번도 가족과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 가족과의 생이별을 선택했다. 흔히 한국의 아빠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로 가족들을 떠나 보내는 것과 반대되는 역(逆) 기러기 아빠가 된 셈이다.
작년 8월 두 아들과 부인을 한국으로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 최진수 변호사가 사무실(미국 뉴저지 포트리 소재)에서 아들들 사진을 보고 있다. 김기훈 특파원
그가 가족들을 한국에 보낸 것은 작년 8월. 아들들이 미국에서 공부를 잘 해도 현지에서 출세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소수민족인 한국인이 미국의 백인 중심 사회에서 일류 직장에 진출하는 게 그리 쉽지 않고, 최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몰려드는 한국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도 다소 부담이 됐다. 그래서 큰아들 민규(15중3), 둘째 아들 민준(104학년)을 거꾸로 한국으로 보냈다. 한국은 물론, 거대 경제권으로 급성장하는 중국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변호사 일을 하던 부인도 직장생활을 잠시 접고 아들들과 동행했다.
이들은 지금 서울 이촌동의 아파트에 산다. 민규는 연희동 서울외국인학교에, 민준은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닌다. 서울에 가기 싫다고 하던 두 아이의 등을 떠밀어 보낼 때에는 애들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4년 동안 아이들을 한국학교에 보냈고, 부인 김씨도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 단어를 열심히 가르쳤다.
다행히, 7개월여가 지난 지금 두 아이는 한국말이 부쩍 늘고 한국 생활을 즐기고 있다. 민준은 떡볶이 집을 아주 좋아한다. 최씨는 전화통화 할 때마다 아이들의 한국말이 쑥쑥 느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다고 했다.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한 한국 유학이지만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치 않았다. 무엇보다 학비 부담이 컸다. 미국에서는 학군이 좋은 뉴저지 테너플라이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학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두 아이 모두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큰아들 민규는 학비로만 연간 2000만원 이상 든다. 게다가 과외로 단련된 한국 친구들을 따라가려면 과외비도 그만큼 든다. 작은 아들 민준은 피아노, 속독과 같은 과외 말고도, 영어 실력 유지를 위해 원어민 영어 지도를 받는다. 최씨는 미국 교포사회에서도 한국식 과외가 있지만, 서울의 과외는 정말 장난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최씨 부부는 아이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나중에 한국에서 일류 직장을 잡기를 바라고 있다. 최씨는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하게 됐다며 제 아이들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역기러기 생활을 얼마든 참아내겠다고 말했다
포트리(뉴저지) = 김기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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