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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엔 젊은이만 간다고?”

시내 점포에 노인도 즐겨 찾아…"약속 쉽고 친구와 얘기 나누는 장소로 적합"

“어, 이게 스타벅스 맞아?”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있는 스타벅스 SC제일은행 본점. 이곳에 들어서면 잠시 멈칫한다. 근처 직장인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을 빼고는 손님의 절반이 노인. 그것도 70~80대 노인이 많다. 실내 장식은 전형적인 미국식인데 앉아 있는 손님은 ‘옛날식 다방’ 풍경 그대로다.

한국 진출 7년째, 미국의 세계적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는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벌써 175호점이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MP3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러나 적어도 서울의 2~3곳 스타벅스에서만은 젊은이가 아닌 노인이 주류다. 대표적인 곳이 스타벅스 SC제일은행 본점.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스타벅스를 노인들이 야금야금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9월 5일 스타벅스 CS제일은행 본점. 노인 손님이 곳곳에 앉아 있다.

지난 9월 4일 오후 2시 스타벅스 SC제일은행 본점. 손님 30여명 중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적어도 나이 60은 훌쩍 넘어 보이는 이들이 절반을 넘었다. 자리가 좋은 창가 쪽 자리는 모두 ‘노인 점령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2명이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 끼어들었다. 83살 동갑이라고 했다. 산뜻한 남방 차림, 깔끔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자주 오냐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와. 나오면 서너 시간을 여기서 보내. 좋잖아. 누구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여름엔 에어컨 틀어주니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 이만한 데가 없어. 여긴 우리 ‘그룹’(자주 만나는 동년배 노인들을 그렇게 불렀다)의 집합장소야.”

3년째 단골이라는 박노천 할아버지,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그리고는 “여긴 60대는 명함도 못 내밀어. 나이 든 축에도 못 끼지. 70대 정도는 돼야 해”라며 빙긋 웃었다.

▲ 스타벅스에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칙칙한 조명 아래 자리에 앉아 마담에게 커피를 주문하는 ‘옛날식 다방’에 익숙함 직한 노인들이지만 계산대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직접 받아오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얘기꽃을 피우는 할머니 3명, 이들 역시 나이가 70대라고 했다.

또 다른 한 편에서 돋보기 안경 너머로 느긋하게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산뜻한 베이지색 양복, 감색 넥타이에 중절모, 와이셔츠엔 구김 하나 없었다. ‘이 멋쟁이 할아버지도 80대인가?’ 겉모습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내 나이? 아흔세 살.” “헉!” 놀라 다시 물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귀가 먹었나. 아흔셋이라니까.” 그제서야 얼굴에 굵게 팬 주름과 자리 뒤편에 놓인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박영봉 할아버지. 경기도 안산이 집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일요일만 빼고 매일 이곳으로 나온다고 했다. 일종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집에서 아침 8시쯤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면 여기 10시30분쯤 도착해. 내가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걷는 시간이 좀 걸려서 그래. 내가 그래도 아직은 멀쩡해. 젊어서 손기정 옹하고 마라톤을 했던 적도 있다고.”

단골이 된 이유를 물었다. “한 2년쯤 됐지. 누가 이리로 약속을 잡기에 나와봤더니 좋더라고. 그때부터 쭉 이리로 나왔지. 아침에 나오면 점심 먹을 때를 빼고는 계속 여기 있다가 오후 5시쯤 집으로 간다고.”

그에겐 이곳이 ‘개인 사무실’. 여기서 지인들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한다고 했다. “오늘만 벌써 4명을 만났어. 커피값이 제일 싼 게 2500원인데 내가 냈지. 오늘은 점심도 조금 비싼 걸로 먹었는데, 얼마나 썼나. 아, 2만1500원 썼구먼. 보통 1만원 정도 쓰는데 오늘은 조금 과했네.” 거의 매일 오다 보니 이젠 얼굴 알아보고 인사하는 직원도 생겼다고 했다.

다방이 아닌 신세대 커피점이 노인들에게 점령당한 이유는 뭘까.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무엇보다 “약속하기 편하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옛 제일은행 본점이 있던 자리라 노인들이 찾기 쉽고, 옛날 다방처럼 오래 앉아 있다고 눈치를 주는 마담도 없어 약속 장소, 시간 보내기 장소로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또 커피값 낼 정도의 돈 있는 노인들이 많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이곳을 찾는 노모(83) 할아버지는 매월 150만원 정도의 돈을 손에 쥔다고 했다. 서울 강북의 아파트를 월세 놓아 매월 100만원씩 수입이 들어오고 자녀들도 매월 50만원을 용돈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근데 말이야, 우리가 갈 데가 없어. 옛날 종로 주변에 많던 다방도 거의 없어졌잖아. 그러니까 자주 모이는 그룹들이 여기서 만나 차 한잔 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하다가 종로 뒷골목에서 식사하고 그러는 거지.” 그는 “여기 나와 하루 일정을 짠다”고 했다.

스타벅스의 ‘한국화 전략’도 노인들을 이곳으로 모은 이유다. 스타벅스는 ‘오래 앉아 얘기 나누며 커피 마시는’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좌석이 많은 대형 매장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구조다. 그래서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공간이 생겼다.

이곳보다는 덜 하지만, 서울시청 옆 스타벅스 무교점에도 상당수의 노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지난 9월 5일 오후 4시쯤 갔을 때엔 손님 40여명 중 10여명이 노인이었다. 2년 전부터 거의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는 김모(85) 할아버지는 “방해 받지 않아 좋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해서 좋다”고 했다.

서울 도심의 스타벅스에 노인들이 많이 모이면서 그들 사이에 일종의 ‘불문율’도 생겼다. 광화문과 종로 일대 직장인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은 피하라는 것. 김 할아버지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며 “영업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점심시간은 젊은이들을 위해 비켜주는 게 에티켓”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스타벅스 뉴코아반포점도 노인들이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 다만 이곳은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려는 노인보다는 여유로운 노부부들이 저녁에 쇼핑을 하고 즐겨 찾는다고 한다. 스타벅스 코리아 관계자는 “초창기만 해도 대부분 젊은층이 찾았지만 고객 연령층이 넓어지고 있다”며 “고객 연령층이 높아지는 점포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노인들의 ‘스타벅스 점령’은 한국 사회 고령화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홍미령 소장은 “돈이 어느 정도 있는 노인들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며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440만명이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30년에는 119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원규 주간조선 기자 wkchoi@chosun.com
입력 : 2006.09.17 11:27 52' / 수정 : 2006.09.17 11:29 47'
Source: http://www.chosun.com/magazine/news/200609/2006091700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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