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탕의 여자 때밀이

나일등: 남탕의 여자 ‘때밀이’
출장 때문에 머물고 있는 돗토리현 사카이항구의 목욕탕에서 또 당황했다. 남탕으로 불쑥 들어온 여자 청소원 때문이다. ‘일본 시골엔 노인만 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시골 중에서도 시골인 이곳의 목욕탕 청소원은 마흔 정도 돼 보이는 아줌마였다. 볼에 발그레한 화장까지 했다. 2평 정도의 작은 노천탕에서 마음을 푹 놓고 있는데, 아줌마가 불쑥 탕으로 오더니 물을 한 바가지 퍼간다. 청소에 쓸 요량인가 보다. 순간 다리를 오므렸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아줌마와 두 번째 만난 곳은 탈의실이다.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또 들어와 일명 ‘찍찍이’로 바닥의 머리카락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꼼꼼히 청소를 하던지 알몸 사내의 발밑까지 ‘찍찍이’를 들이댔다. 얼른 수건으로 가렸다. 물론 아줌마는 내 몸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목욕탕에선 바가지, 탈의실에선 ‘찍찍이’만 바라볼 뿐이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가는 도쿄의 집 근처 목욕탕도 청소원이 여자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다. 화장은 물론 안 한다. ‘몸빼’로 불리는 풍성한 바지에 한 손엔 꼭 전기 청소기를 들고 남탕을 누빈다.
할머니의 특징은 동네 할아버지들과 매우 친하다는 것이다. 남탕에서 오랜 교분(?)을 쌓은 모양이다. ‘특정 부위’만 수건으로 가린 할아버지와 수다를 떤다. 그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면 일본 목욕탕에선 성(性)의 장벽이란 애당초 없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난 아직도 죄인처럼 할머니를 슬슬 피해 다닌다.
가장 당황한 것은 작년 여름 도쿄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쯤 걸리는 ‘아타미’란 유명 온천에서 알몸으로 여자를 대한 순간이다. 5층짜리 커다란 온천 목욕탕이었는데 속칭 ‘때밀이’로 불리는 남탕의 세신사(洗身士)가 여자였다. 청소원은 바닥을 닦지만, 세신사는 사람 몸을 닦는다. 게다가 힘이 필요한 직업이라 아타미의 여자 세신사는 젊었다. 빨강 반바지에 흰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달랑 수건 한 장 걸친 남자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면서 때수건으로 몸을 문질렀다.
내가 감탄한 것은 여자 세신사가 아니다. 초연하게 알몸을 맡긴 일본 남자들이다. 염불이라도 외우는 것일까? 미동도 없다. 어떻게 평상심을 유지할까 싶었다. 나는 엄두를 못 냈다.
몇 년 전 독일에서 만난 한국 주재원이 “프랑크푸르트에 오는 한국 손님은 툭하면 남녀 혼탕에 가자고 한다”고 불평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데리고 가면 엉뚱한 환상에 젖어 흥분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얘기다.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인지 농담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듯했다. 안마, 마사지에서 심지어 멀쩡한 이발소까지 여자 손길이 닿는 곳이면 영락없이 퇴폐로 흘러간 것이 한국 사회의 습성 아닌가?
내가 여자 세신사를 두려워한 것은 ‘내 마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를 미는 데 세신사의 성별이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본질과 상관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엉뚱한 ‘분별’을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남성의 나쁜 버릇이 아닐까?
분명 여자 앞에서 당황하는 나 역시 한국 남자 중 한 명이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알몸으로 대하리라. 분별없이, 미동도 없이.
선우정 조선일보 특파원 su@chosun.com